아침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갔다가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우산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농사를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빗소리가 좋아 창문을 조금 열어놓는다.
같은 비를 보고도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그날 나는 문득 오래전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물밖의 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겨울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굳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이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미 하나의 생각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자기만의 우물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을 때
며칠 전 동네에서 오랫동안 작은 식당을 하신 어르신을 만났다.
그분은 평생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한곳에서 이렇게 오래 장사하셨으면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셨겠어요.”
어르신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늙었는데 뭘 더 보겠어.”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분에게 세상은 식당 앞 골목과 시장과 동네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것이 그분의 전부였지만, 어쩌면 그 전부가 그분에게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자리가 다르고, 경험한 계절도 다르다.
문제는 내가 본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만큼 살아봤으니 안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런 일을 겪어봤으니 사람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올 자리가 점점 없어져 간다.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만큼만 본다
어릴 때는 세상이 아주 넓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더 넓어지고, 일을 시작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 실패를 겪으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만 확인하려 한다.
내 생각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 괜히 불편하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이해하려 하기보다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나의 생각에 익숙해지면 그 생각은 어느새 작은 방이 된다.
처음에는 편안해서 들어간 방인데, 나중에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생각의 감옥은 철창이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른다.

어느 날, 어린아이에게 배운 것
예전에 길을 걷다가 한 아이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얼 보고 있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달팽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청 느리게 가는데도 길을 잃지 않네.”
나는 웃었다.
어른이었다면 달팽이가 느리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느리다는 것보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세상을 좁게 보는 것은 아닐까.
많이 살아서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살아서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문은 안에서만 열린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보여주려면 우선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여름 벌레에게 겨울을 설명하려 해도, 그 벌레에게는 겨울을 받아들일 시간이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많이 한다고 반드시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짧은 한마디가 때로는 오래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연다.
조금 덜 알고,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
살다 보면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조금 부끄럽지만, 지나고 나면 오히려 고맙다.
내가 갇혀 있던 생각에서 한 걸음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다.
사람의 마음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하는가 보다.
죽을 때까지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고,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다고,
나는 이래서 안 된다고,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그렇게 마음속에 문을 하나씩 닫다 보면
어느 날 우리가 갇혀 있는 곳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 속일지도 모른다.
오늘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보고,
나와 다른 생각 앞에서 한 번쯤 고개를 끄덕여보자.
우물 밖에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바다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넓을 것이다.
사람을 가두는 가장 좁은 감옥은 어쩌면 세상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굳게 믿어버린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은 열어두고 살자.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도록.
내가 틀릴 수도 있도록.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세상을 위해,
마음 한쪽에는 언제나 작은 문 하나를 남겨두자.